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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제3의 물결 ⑨ – 코페아 커피 최지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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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아 커피.

(사진 설명: 코페아 커피 본사 1층 매장에서 만난  최지욱 대표)

커피 제3의 물결이라는 연재 기사를 통해서 의도치는 않았지만 한국 스페셜티 커피가 남기고 간 발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필자는 하게 되었다. 그 간의 인터뷰 중 몇 번의 인터뷰에서 자주 등장하던 이름이 바로 코페아 커피의 최지욱 대표이었다. 첫번째 인터뷰였던 커피전문점 시공 전문업체인 ‘카페인 마켓’ 조재호 대표를 비롯해서 안재혁(2010 KNBC 챔피언 및 세계대회 국가대표), 류연주(2012 KNBC 챔피언 및 세계 대회 국가대표) 그리고 올해의 바리스타 챔피언인 박근하 바리스타까지 모두 ‘코페아 커피’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바리스타 챔피언들의 뿌리가 모두 한 곳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최지욱 대표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를 코페아 커피 본사에서 만날 수 있었다.

Q1. 처음 커피에 대한 기억은?

어린 시절, 원두 커피를 접하기 어려운 시절부터 아버지는 정성스레 핸드밀로 갈아낸 커피를 페이퍼 필터에 올려놓고 뜨거운 물로 내리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자연스럽게 원두 커피를 접하고 있었다.

Q2. 처음부터 커피를 생각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신건 아니라고 들었다.

그렇다. 커피보다는 커스터머 서비스쪽에 관심이 많았다. 손님들과 함께 숨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그들에게 작지만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2000년도 제대후 음악을 공부 중이었다. 작곡을 하고 싶었는데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은 단순히 향유 차원을 넘어서 필연적인 재능이 필요한 영역이었다. 마침 커피를 수입하는 회사에 다니던 친구가 향후 한국내에서 커피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주었고, 재능없는 작곡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해보고 싶었던 커스터머 서비스쪽을 도전해보게 되었다.

Q3. 어디에서 처음 시작했나.

수원 아주대학교 앞에서 New`s Bar라는 이름으로 2001년 문을 열었다. 미국의 뉴욕에 유명한 Bar를 모티브로 한 숍이었다. 당시 누구나 그렇듯 커피의 맛에 대한 아무런 고민없이 추출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커피를 손님들에게 제공했다는 사실에 꽤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당시의 뉴스바 컨셉은 커피의 맛에 포커싱되어 있었다기 보다는 누구나 와서 편안하게 즐기다 갈 수 있는 커피바였다. 컨셉은 아낌없이 주는 숍이었던 것 같다. 어떤 메뉴이건 줄수 있는 것 이상으로 주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대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같다.

Q4. New`s Bar 이후에도 계속 커피였나.

아니다. 커피로 돈을 벌고, 이후에는 칵테일 바였다. 이름은 동일하게 New`s Bar였고, 주로 주류를 취급하는 숍을 오픈했다. 문제는 내가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과는 정상적인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후 사업을 접고, 영업 사원으로 일했다.

Q5. 어떤 영업이었나.

다양한 잡화를 취급하는 무역 회사였다. 주로 호텔 가정용 세제를 취급하고, 그 외에도 커피도 조금 수입하던 조그만 회사였다. 사업을 하던 시절보다 수입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았지만 수입보다 경험을 획득한 것은 큰 소득이었다. 당시 커피를 수입하던 회사였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8-9개월의 회사 생활동안 회사의 커피를 사용하던 납품처를 돌며 관리 및 교육을 담당했다. 그 당시의 경험들이 지금의 코페아 커피의 밑거름이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 자신의 정체성이 필터링되는 느낌이었다. 좋은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깨달음을 준다는 것은 동일하다.

Q6. 그 이후 WBC(World Barista Championship)에 출전하신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 1년이 조금 안된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세계 대회를 준비하려는 결심이 섰다. 예전 아주대에서 New`s Bar를 하던 시절 커피를 공급하던 거래처 차장님이 있었는데 그분의 권유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2회째였던 CBC(Corea Barista Championship, 현재 KNBC의 전신)에 출전했다.

Q7.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과 관련된 경기 진행이나 룰에 대한 부분에서 어려움이 없었나?

물론 있었다. 하지만 리에스프레소 학원장인 이승훈 원장님이 많이 가르쳐주셨다. 사실 출전 당시만 해도 내가 국가 대표가 될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선천적으로 무대에 대한 공포감이 덜한 타입이라 떨지 않고 시연했던 것이 플러스였던 것 같다.

Q8. 세계 대회는 어떠했나?

2005, 2006년 연속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되어서 나가게 되었는데 2006년 세계 라떼아트 챔피언쉽에서 2위라는 성적을 거뒀다. 사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성과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어떨떨했다.

Q9. 당시 국내에 이미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 관한 소스가 있었나?

룰과 같은 공식적인 정보들은 존재했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인 점수에 대한 소스가 없었다. 당시에는 시연할 때 어떻게 스크립트를 짜야 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

Q10. 대회 수상이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달라진 것은 많지 않았다. 다만 불러주는 곳이 많았다.

Q11. 이후 코페아 창업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사실 대회 수상에 대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던 것이 지금도 그렇지만 세계 바리스타 대회는 결국 하나의 바리스타들을 위한 이벤트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나 언론에서나 크게 반향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커피라는 인더스트리의 규모가 움틀거리기 시작하는 시점이었고, 그에 따라 국내의 여러 대학에서 바리스타학과가 개설되었는데 당시 일일 강사로 일하게 되어 많은 젊은 커피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역시 나에게 매우 의미있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만난 제자들이 회사의 창업 멤버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숭훈 원장님이 운영중이던 리 에스프레소라는 에스프레소 머신 판매 회사에서 트레이너로 일하던 중 이 원장님에게 교육장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후 리 에스프레소는 커피 전문 교육 회사로 정체성을 굳히게 되었다.

Q12. 코페아 커피를 창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07년도 3월에 창업을 했다. 당시 창업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리 에스프레소를 그만 두고 쉬던 중 같은 교회를 다니시던 장로님이 사업차 커피 농장에 가자고 제안을 했다. 인생의 선배로써 사업가로써 존경하던 분이라 거절하지 않고 중국 운남에 있는 커피 농장으로 떠났다. 당시가 2006년 11월이었는데 커피 농장에서 생활하는 많은 중국인들이 처한 씁쓸한 환경에 대해 보게 되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어울리지 않게 감상적인 느낌이 빠지더라. 내가 그동안 너무 나를 위해서만 살았다는생각이었다. 일종의 커피를 하는 사람으로써의 약간의 책임감이었다. 그 책임감이 창업을 결심하게 했고, 경기동 성남 복정동에 자그만한 로스팅 공장, 숍, 아카데미를 오픈했다. 처음에 로스팅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로스팅 프로파일에 대한 가닥을 잡았고, 2년 정도 이후부터는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섰다.

사실 창업 초기에는 프랜차이즈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는데 로스팅을 하고 납품을 하다 보니 우리의 브랜드에 대한 공유를 원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어긋나지 않는다면 나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고, 2호점을 허락했다.

Q13. 코페아라는 작명을 선택하신 이유는?

코페아가 커피의 품종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함께’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코페아 커피를 창업할 때의 계기를 생각해 보면 더할나위 없는 네이밍이라고 생각한다.

Q14. 이후 코페아 커피에 좋은 바리스타들이 모이게 된 계기가 있나.

코페아 창업 이전 리에스프레소에서 트레이너로 일하던 때부터 많은 후배들이 가볍게 놀러왔었다. 그렇게 알던 후배들을 창업 구성원으로 함께 했다. 안재혁 바리스타, 박홍덕 바리스타가 창업 멤버였다. 확실히 사람도 첫 단추가 중요한 것 같다. 좋은 후배들을 창업 멤버로 두고 나니 이후에 박근하, 류연주 등 열정을 가진 바리스타들이 함께 할 수 있었다.

Q15. 코페아 커피의 해외 진출은 어떤가?

현재 코페아 커피의 매장은 해외 매장까지 60개 정도가 된다. 해외에는 말레이시아에 아시아 법인이 있다. 말레이시아 매장의 경우에는 매우 성공적이다.

Q16. 최근 서울카페쇼에 참가하는 로스터들이 많다.

다른 로스터들이 서울카페쇼에 나가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페아 커피의 경우에는 서울 카페쇼에 참가해서 무엇을 보여줄지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참가하는 것을 보류하기로 한 상태이다.

Q17.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

경쟁력이다. 우리의 경쟁력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다. 내가 관람객으로 감정이입을 했을 때 과연 코페아 커피라는 단체가 가지는 색깔이 궁금하다. 이제 더이상 바리스타 챔피언이라는 수식어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대회와 그 대회로 파생되는 수많은 수상자들은 그러한 타이틀에 대한 가치를 바래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보여 주고 싶은 것은 코페아 커피가 다른 커피 회사들과 무엇이 다른지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 방향성을 명확히 찾을 때까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현재까지 아무런 홍보없이 코페아 커피를 이끌어 왔다.

Q18. 코페아 커피의 회사 문화는 어떠한가?

사장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칭찬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생각을 나와 함께 공유하는 것을 어렵지 않도록 하는 문화를 만들려고 한다. 창조적인 생각이 나오려면 기존의 틀에 대한 파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좀 더 자유로운 사고를 하도록 독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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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매년 코페아 커피에서는 국내 보육원뿐 아니라 아프리카 커피 산지의 농민들을 지원한다.)

최지욱 대표는 확실한 리더였다. 그가 가진 리더쉽은 구성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가치를 명확히 하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그의 리더쉽을 빛나게 했던 건 구성원들의 공유된 목표를 향한 의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환경을 만들고 공유된 목표에 도덕적 가치를 더하는 일이었다. 그는 지금도 코페아 커피가 가진 뚜렷한 장점이 없다고 말한다.

코페아 커피가 가진 화려한 이력들이 장점이 아니라면 도데체 무엇이 장점인가? 이 물음은 현재 커피라는 인더스트리 내에서 커리어를 쫓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최지욱 대표의 선물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기사 작성/김상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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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수년전, 스페셜티 커피전문점에서 마신 한잔의 커피로 인텔리젠시아 커피의 제프 와츠가 커피잔안에서 빛이 쏟아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아 커피 블로거의 길에 들어섰다. 2012년 7월부터 커피문화 매거진인 커피룩에 커피 칼럼을 기고하였으며, 2013년 4월에 채널A 먹거리 X파일의 커피 전문 검증단 패널로 '착한 커피'를 선정하는데 참여했다. 그후 커피 전문 블로거로 현대자동차그룹 사내 매거진에 커피 칼럼 기고 및 스페셜티 커피쪽의 다양한 커피인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하였었다. 현재는 Aving News의 기자로 스페셜티 커피를 취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