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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창업백과] 열정과 끈기의 청춘 보고서, 뉴웨이브 커피로스터스의 유승권 로스터

처음 그를 봤던 것은 2012년 바리스타 국가 대표 선발전이 있었던 2012 코리아 커피 페스티벌에서 였다. Pour Over(드립)방식의 세계적인 바리스타 대회인 월드 브루어스 컵에 출전할 국가대표 선발전 마지막 시연을 하던 유승권씨의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의 시연이 유독 눈길을 끌었던 이유는 당시에 국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커피 추출 기구인 덴마크 에바솔로라는 업체의 ‘카페솔로’라는 추출기구를 처음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구릿빛 톤의 피부에서 나오는 열정적인 카페솔로에 대한 소개는 당시 필자에게 있어서 카페솔로라는 추출 기구를 구하기 위해 안달이 나도록 했으니 말이다.

(사진 설명: 호주의 생두업체인 MTC 그룹 사무실에서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인 폴 바셋과 함께)

당시만 해도 그의 나이는 39이었다. 필자는 많은 젊은 바리스타들 가운데 유독 노안이라 생각했던 그 사람이 바로 유승권 로스터였다. 20대의 바리스타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98년도부터 지금까지 그는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려 16년이라는 세월을 커피와 함께 했고 분명 16년이라는 세월동안 그가 느꼈을 시간의 무게감은 분명 쉽지만은 않았을 것임이 분명하다. 한 잔의 커피가 우리 앞에 놓이기까지 긴 세월이 걸리듯 그렇게 그의 커피는 무르익어 가고 있었나 보다. 그 무르익은 커피 한잔을 만들기 위해 그는 그렇게 그 자리를 지켰다. 국내에서는 이미 우리엘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한 유승권 커피로스터를 인터뷰했다. 그가 가진 세월의 깊이가 새로이 카페를 창업하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영감과 통찰력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Q1. 처음 나이를 알게 되었을 때 약간의 놀람이 있었다. 바리스타 대회라는 것이 불혹을 앞둔 사람이 출전하기에는 너무 젊은 느낌이다.

-2012년 국가 대표 선발전 당시에는 불혹 직전의 나이였다. 좋은 경험이었다.

Q2. 대학교 전공은 커피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일본어를 전공했다. 커피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이미 원두 커피의 소비 문화가 가정까지 확산되어 있던 일본에서 출판된 커피 서적들을 통해 커피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정립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Q3.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이 커피를 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국내에 커피와 관련된 전문적인 서적은 전무했다. 당시에 원두 커피를 즐기던 사람들이 생각했던 트렌디한 커피는 대개 후지 로얄이라는 일본 로스터기로 강하게 볶아서 칼리타나 멜리타 드립퍼로 내린 커피였다. 내가 아는 한 커피를 하는 사람들끼리의 각자의 주관적인 기준이 난무했을 뿐 제대로 된 지식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건 언어의 장벽에서 오는 한계였다. 일본어는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실제로 국내에는 최근 2012년 7월에 번역되어 출간된 ‘스페셜티 커피 대전’이라는 책을 나와 같은 경우 일본어를 전공했기 때문에 원서로 볼 수 있었고, 당시의 내용에 매료되어서 모두 번역해서 읽었었다. 그런 경험이 실제로 ‘더 알고 싶은 커피학’이라는 일본 커피 서적을 공저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일본어를 전공한 목적이 커피는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나에게 일본어는 유리한 장점이었다. 때문에 현재 바리스타나 커피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기본적으로 영어를 할줄 알면 유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일본보다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언어가 영어이기 때문이다.

(사진 설명: 좌측은 유승권 로스터가 공동번역한 더 알고 싶은 커피학 원서, 우측은 커피대전 원서)

Q4. 유승권 로스터는 영어도 잘하는 걸로 알고 있다. 영어는 커피를 위해 따로 공부한 것인가?

-아니다. 영어는 잘 못한다. 기본적인 대화만 할 뿐이다. 다만 잘하려고 노력 중이다.

Q5. 일본어를 전공한 이후 직업 선택은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것을 선택했다고 들었다.

-그렇다. 두산 씨그램 스쿨(현 조니워커스쿨)에서 주조사 과정을 이수한 이후에 강남역에 있는 레즐데즐이라는 곳에서바텐더로 근무하였다.

Q6. 바텐더라면 바(bar)안에서 일하고 누군가에게 음료를 제공한다는 것은 바리스타와 무관한 것 같지는 않다.

-당시 커피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바텐더로 일하면서 전반적인 음료와 관련된 시장의 성격은 분명히 파악했던 것 같다. 칵테일을 제조할 때도 아무리 일류 바텐더라 할지라도 맛을 결정하는 것은 술이라는 원재료의 한계를 넘어서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바텐더라는 직업을 통해 항상 느끼던 것은 ‘재료의 중요성’이었다. 커피도 연장선상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Q7. 커피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

-바텐더라는 직업에 대해 불안한 느낌을 갖게 될 때쯤이었다. 남들과는 다른 생활 리듬에 대한 회의였다. 저녁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는 것이 몸에 무리를 주었고, 칵테일을 만드는 기쁨이 점점 사라져 갔다. 마침 지인이 근무하는 도산 공원의 플라스틱이 라는 곳에서 맨파워가 부족하다고 해서 돕게 되었다. 당시에 커피에 대한 느낌은 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98년 당시에 커피가 그리 대중적인 음료는 아니었다. 아마 내가 강남에 적을 두고 일을 했기 때문에 원두 커피를 일찍 접하게 된 것 같다.

Q8. 커피를 만드는 일을 한다고 해서 유 로스터처럼 커피에 그렇게 깊게 들어가는 것 같진 않다. 커피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

-앞서 일부 이야기가 나왔지만 주조사로써의 경험은 나에게 커피라는 음료가 만들어지는 과정 중 카페에서 행해지는 ‘추출’이라는 과정보다 원재료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원재료인 원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당시 명동에 생두를 볶는(로스팅)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곳을 찾아 갔다.

Q9. 항상 인터뷰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커피에 매료되는 사람들의 특징은 호기심이 강하다는 교집합이 있는 것 같다. 98년 당시 로스팅을 하는 곳이 어디었는가?

-전광수씨였다. 이미 너무 유명해지신 분이라 아실 것 같다.

Q10. 명동이라는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로스팅을 배우고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나.

-로스팅을 배우면서 현재 국내에 소개된 커피 관련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앞서 언급했던 일본어로 된 커피 서적들을 번역해가면서 읽었다. 커피를 공부해 가면서 주조사로써 내가 가지고 있던 재료에 대한 나의 가정은 확신이 되어 갔고, 더욱 커피에 매료되었다. 이후 로스팅 뿐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커피를 좀 더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라떼 아트, 에스프레소 추출 등과 관련된 국내에 몇 안되는 학원들에 다니면서 커피의 전반적인 과정들에 대해 공부해 나아갔다.

Q11. 당시 커피 시장의 확대는 대형 프랜차이즈 주도의 획일화된 맛을 가진 커머셜 커피를 통해서 이뤄질 시점이었는데 커피를 그렇게까지 공부할 필요가 있었나?

-당시 나의 커피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은 시장의 확대와는 무관한 것이었던 것 같다. 단지 커피를 더 잘 알고 싶었고, 미지의 세계를 만난 느낌이었다. 세계적으로도 막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시작될 시점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손대지 않은 영역에 대한 모험심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미 고급 커피 시장의 확대가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국내에서도 스페셜티 커피의 위상이 나날이 달라지고 있다. 프랜차이즈 커피들이 대중에게 커피라는 음료에 대한 전반적인 시장의 확대를 가져왔기 때문에 고급 커피를 시장에 소개하고 마켓의 틈새를 찾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Q12.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 최근 주위에 부쩍 집에서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혼자서 커피를 배우기 위해 꽤 분투한 느낌이다.

-그렇지 않다. 나 혼자였다면 절대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 커피를 하던 주위의 많은 바리스타들과 로스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도 나는 네트워킹의 중요성에 대해 항상 교육생들에게 강조한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국내 커피 시장은 전세계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점과 같이 작은 시장이다. 이 시장에서 우리가 모색해야 할 것은 함께 고민하고 분투해야 한다.

Q13.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

-당시 강배전의 커피를 드립으로 내리시던 박이추 선생의 보헤미안 커피가 고려대학교 앞에 있던 시절에 당시 보헤미안에서 일하고 계셨던 서필훈씨(현 커피 리브레 실장)와 함께 미국의 생두업체인 카페 임포츠(Cafe Imports)를 통해 생두를 들여왔던 기억이 있다. 그 때만 해도 국내에 들어오는 생두는 모두 일본을 통해 들어왔고, 좋은 커피를 찾기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에 해외의 생두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실제로 들여온 생두를 볶아서 블렌드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Q14. 이후 거의 프리랜서로 일했다고 들었는데 소속없이 커피를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프리랜서로 할 일이 없었다면 힘들었을텐데 그렇지가 않았다. 물론 쉬웠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내가 일찍 결혼하면서 그 부분이 가장 아내에게 미안한 부분이다. 아내가 나를 지원해주었던 것은 커피가 돈이 되어서가 아니라 커피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아내로써 힘든 부분이 많았을텐데 잘 참아주었다. 아내에게 항상 미안하고 감사하는 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 커피 서적을 함께 번역 작업을 하고 출판도 했기 때문에 트레이닝이나 로스팅 요청이 있었다. 또한 2009년부터 외래 강사로 고려직업전문학교 바리스타학과에서 1학기를 다녔고, 2010년부터는 신구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외래 교수로 초빙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Q15. 산지에도 다녀오신 경험이 있다고 들었다.

-산지라고 말하기엔 좀 부족하다. 과테말라의 커피 농장과 가공 시설들을 볼 기회가 좀 있었다. 2008-2009년도에 커피 트레이닝과 로스팅을 담당하고 있을 때, 과테말라에 갈 기회가 생겼다. 기회가 좋았던 것 같다. 이때 큐그레이더(Q-Grader)라는 직업에 대해 더 명확히 알게 되었던 것 같다. 흔히 커피 품평가로 알려진 큐 그레이더라는 자격증은 단순히 커피를 품평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이 작업을 커핑(Cupping)이라고 부르는 데 산지에서는 이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과테말라 산지 투어에서 현지의 커퍼(커피 품평가)들은 우리가 도착했을 때 커핑룸에서 여러 컵들에 커피를 담고 나서 뒤로 빠졌다. 다소 긴장된 분위기가 불편했지만 집중해서 커핑을 했고, 내가 생각하는 좋은 커피에 대해 물었다. 그들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한참을 현지 커퍼들끼리 이야기를 하더니 이내 그 커피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이후 현지 커퍼들과 친해지게 되었고, 그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농장과 가공 시설들을 보여줬다.

(사진 설명: 과테말라 산지에서 커핑중인 유승권 로스터)

Q16. 당시 과테말라 커퍼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후에 알게 된 것인데 과테말라의 현지 커퍼들이 알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커피 맛을 잘 아는지에 대한 시험이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팔리는 커피들도 사실 과테말라 안티구아라고 하면 다 똑같은 커피로 생각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당시 과테말라 커퍼들이 테이블에 깔아놓은 커피들도 모두 같은 지역에서 재배되는 커피들이었다. 문제는 고도였다. 커피는 고도가 높을수록 일교차로 인한 열매의 숙성 정도가 달라 커피의 품질이 좋다. 현지 커퍼들은 우리가 그런 고도 차이까지 느끼는 바이어들인지가 궁금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재배하는 커피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팔기 싫었던 모양이다. 이는 같은 지역의 커피라고 해도 커피가 재배되는 고도와 자연 환경에 따라 커피의 품질이 천차만별이 된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현재 국내 소비자들도 이러한 커피들의 차이점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 같다. 소비자들의 소비가 점점 똑똑해지고 있다.

Q17. 전세계적으로 보면 국내에 큐 그레이더가 가장 많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앞서 언급했듯이 시장의 확대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지든 함께 걸어갈 동지가 많아진다고 생각하면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Q18. 뉴웨이브 커피 로스터스의 아지트는 교육장이라고 들었다. 확실히 와보니 트렌디한 머신부터 그라인더까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구성인 것 같다.

-노력중이다. 처음부터 숍이 아닌 교육장을 위한 개념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모든 테이블부터 머신까지 바리스타 대회 준비에 초점을 맞춘 구성을 생각했다. 누오바 시모넬리(Simonelli)의 아우렐리아라는 머신을 선택한 이유는 현재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이라는 세계 무대에서 사용되는 머신이기도 하다. 또한 고가의 에스프레소 머신인 라마르조꼬(La marzocco)의 스트라다 EP를 들여놓은 이유는 현재 전세계적인 커피 추출의 트렌드를 반영한 머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라인더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향미를 잘 살려주는 대형 원추형의 Burr를 가진 메져 로버와 작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이슈였던 말코닉(Mahlkonig)의 EK43 그라인더 역시 교육생들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Q19. 국내에서 은퇴하시는 분들 가운데 대개는 카페 창업을 꿈으로 하시는 분들이 많다. 16년 선배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비자들보다 그 분야에 있어서 더 앞서가고 트렌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커피 시장의 소비자들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창업에 있어서 준비해야 하는 기간은 과거보다 더 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생각하고 있다면 당장부터 미리 준비하지 않고 창업 시점에 가서 준비한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나도 이 교육장을 오픈하기까지 16년이 걸렸다.

 

유승권 로스터는 평소에 말 수가 많지 않지만 커피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하면 멈출줄을 몰랐다. 그가 가진 커피에 대한 애정과 해박한 지식은 그저 커피 소비자인 필자에게 있어서 신세계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도 자기보다 이미 앞서 가신 선배들과 이야기할 때 그들의 해박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며 자신을 낮췄다. 그 말이 사실일지 모르겠지만 말할 때마다 느껴지는 그의 자기를 낮춘 마음은 그의 커피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사진 설명: 서울 목동 오목교역 근방에 위치한 뉴웨이브 커피로스터스)

(사진 설명: 2012년도 브루어스컵 국가 대표 선발전 2위 트로피)

(사진 설명: 유승권 로스터의 자격증들)

(사진 설명: 뉴웨이브 커피로스터스의 내외부 사진들)

김상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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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수년전, 스페셜티 커피전문점에서 마신 한잔의 커피로 인텔리젠시아 커피의 제프 와츠가 커피잔안에서 빛이 쏟아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아 커피 블로거의 길에 들어섰다. 2012년 7월부터 커피문화 매거진인 커피룩에 커피 칼럼을 기고하였으며, 2013년 4월에 채널A 먹거리 X파일의 커피 전문 검증단 패널로 '착한 커피'를 선정하는데 참여했다. 그후 커피 전문 블로거로 현대자동차그룹 사내 매거진에 커피 칼럼 기고 및 스페셜티 커피쪽의 다양한 커피인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하였었다. 현재는 Aving News의 기자로 스페셜티 커피를 취재하고 있다.